++ 김달진문학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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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e   김달진문학관
Subject   제4회 시야놀자 책자 원고
▶ 2007년 시인과 독자와의 만남 / 제 4회 프로그램
▷ 주최 : 진해시김달진문학관
▷ 주관 : (사)시사랑문화인협의회 경남지회

시인과 독자와의 만남 · 4
시야, 놀자!


초대시인 : 유홍준 / 박서영
기획 · 사회 : 이서린(시인)

일시 : 2007년 12월 15일(토), 오후3시
장소 : 진해시김달진문학관 세미나실

진해시김달진문학관

유 홍 준

흉터 속의 새

새의 부리만한
흉터가 내 허벅지에 있다 열다섯 살 저녁 때
새가 날아와서 갇혔다

꺼내줄까 새야
꺼내줄까 새야

혼자가 되면
나는 흉터를 긁는다
허벅지에 갇힌 새가, 꿈틀거린다

주석 없이

탱자나무 울타리를 돌 때
너는 전반부 없이 이해됐다
너는 주석 없이 이해됐다
내 온몸에 글자 같은 가시가 뻗쳤다
가시나무 울타리를 나는 맨몸으로 비집고 들어갔다
가시 속에 살아도 즐거운 새처럼
경계를 무시하며

1초 만에 너를 모두 이해해버린 나를 이해해다오

가시와 가시 사이
탱자꽃 필 때

나는 너를 이해하는데 1초가 걸렸다

의자 위의 흰 눈


간밤에

마당에 내어놓은 의자 위에 흰 눈이 소복이 내렸다

가장 멀고도 먼 우주로부터 내려와 피곤한 눈 같았다, 쉬었다 가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지친 눈 같았다

창문에 매달려 한 나절,

성에 지우고 나는 의자 위에 흰 눈이 쉬었다 가는 것 바라보았다

아직도 더 가야할 곳이 있다고, 아직도 더 가야한다고

햇살이 퍼지자

멀고 먼 곳에서 온 흰 눈이 의자 위에 잠시 앉았다 쉬어가는 것

붙잡을 수 없었다

문맹


펄프를 물에 풀어, 백지를 만드는 제지공들은 하느님 같다
흰 눈을 내려
세상을 문자 이전으로 되돌려놓는 조물주 같다

티 없는, 죄없는
순백
無化의 길……

더욱 완전한 백지에 이르고자
없애고 없애고 또 없애는 것이 제지공의 길이다, 제지공의 삶이다, 마치 거지의 길이며 성자의 삶 같다

그러므로,

오늘도 백지를 만드는 제지공들은 자꾸만 문자를 잃어간다, 문맹이 되어간다

문명에서―문맹으로

휴일 없이
3교대 종이공장 제지공들은 출근을 한다

문 열어주는 사람

양양 남대천에 연어 보러 갔다가, 자동차 열쇠를 차 안에 두고 문 잠그고 내렸다가 알게 되었다 세상에 하루 종일 한 달 내내 문 열어주러 다니는 사람이 있다는 거, 그것을 알게 되었다 그동안 나는 몇 편의 시로 갇힌 영혼의 문을 열어주었나 물길 따라 멀리 흰 구름 흘러가는 남대천, 자동차 보험회사의 문 열어주러 다니는 사람을 기다리며 나 반성을 했다 여러 번 후회를 했다 지금 나는 누군가가 와서 문을 열어주지 않으면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못하는 사람! 저기 7번국도 위로 연어떼 같은 자동차들이 줄지어 줄지어 귀가하는 것 예사로 보이지 않았다

저기, 바다와 만나는 남대천 끄트머리가
똥구멍처럼 빠끔히
열쇠구멍처럼 빠끔히 열려 있었다

해변의 발자국

얼마나 무거운 남자가 지나갔는지
발자국이. 항문처럼
깊다

모래 괄약근이 발자국을 죄고 있다
모래 위의 발자국이 똥구멍처럼, 오므려져 있다

바다가 긴 혓바닥을 내밀고
그 남자의
괄약근 핥는다

누가 바닥에 갈매기 문양이 새겨진 신발을 신고 지나갔을까

나는 익사자의 운동화를 툭, 걷어찬다
갈매기가 기겁을 하고 날아오른다

喪家에 모인 구두들

저녁 喪家에 구두들이 모인다
아무리 단정히 벗어놓아도
문상을 하고 나면 흐트러져 있는 신발들
젠장, 구두가 구두를
짓밟는 게 삶이다
밟히지 않는 건 亡者의 신발뿐이다
정리가 되지 않는 喪家의 구두들이여
저건 네 구두고
저건 네 슬리퍼야
돼지고기 삶는 마당가에
어울리지 않는 화환 몇 개 세워놓고
봉투 받아라 봉투,
화투짝처럼 배를 까뒤집는 구두들
밤 깊어 헐렁한 구두 하나 아무렇게나 꿰신고
담장 가에 가서 오줌을 누면, 보인다
北天에 새로 생긴 신발자리 별 몇 개

박 서 영

경첩에 관하여


어느 여름날 두 발을 책상 위에 올려놓고
음악을 듣다가
음악에 맞춰 끄덕 끄덕이는 발목을 보았지
문득 발목이 경첩이라는 생각

폭풍 같은 사랑도
경첩이 있어 떠나보낼 수 있었다는 생각
온 몸이 뒤틀리지 않았다는 생각
몸의 문을 열고 닫으며
살과 뼈가 소리 없이 이별을 견뎠다는 생각

몸의 경첩도 낡고 오래되면 소리를 내는가

금이 가고 있는 것이
바람이 들고 있는 것이 몸만은 아닐 것이다

무릎과 팔목과 발목
손목과 손가락의 마디마디들
아, 목이 있는 것들
몸속의 뼈들이 우지직거린다
안과 밖이 通情(통정)을 나누느라
경첩들이 수런거린다

빈집


댓돌 위에 나란히 놓인 신발 한 켤레,
빨랫줄엔 며칠째 걷지 않은 듯한 옷과 이불,
늦은 봄날 개복숭아 나무의 병실을 떠나
기어코 짓뭉개져가는 꽃잎들,
들어가야 할 곳과 빠져나와야 할 곳이
점점 같아지는 37세,
시간의 계곡을 질주하는 바람,
더 이상 내게 낙원의 개 짖는 소리는 들려주지 마!
내용 없이 울어대는 새 몇 마리,

저녁이 검은 자루처럼 우리를 덮는다

죽음의 강습소


오전 여덟 시 상가를 지나친다
동네 입구의 전봇대에는 하얀 종이에
반듯하게 씌어진 喪家→가 붙어 있다
이 길로 가면 상가로 갈 수 있다
나는 지금 문상 가는 중이 아니다
그러나 태어나자마자 이 표식을 따라왔다
울면서도 왔고 졸면서도 왔다
사랑하면서도 왔고 아프면서도 왔다
와보니 또 가야하고 하염없이 가야하고
문상 가는 줄도 모르고 나는 문상 간다
죽어서도 계속되는 삶이 무덤 속에 누워
꺼억꺼억 운다
울다가 가만히 죽은 듯 누워있는 시체들
여자들은 죽음의 강습소에서 과도를 꺼낸다
여자들이 흘리는 눈물을 따먹으며 세월이 간다
동그란 눈물에 과도를 꽂는다
주르륵 흘러내리는 과즙의 맛을 가진 눈물
죽음의 강습소 같은
죽음의 예배당 같은
이 도시의 하늘이 뻥 뚫려 있구나
허공에 흩어진 시간의 표식을 따라가던 어떤 날은
가령 오늘 같은 오전 여덟 시 도시는
영정사진처럼 검은 띠를 두르고
묘비 같은 십자가를 바짝 세우고 있다
그 아래 납작 엎드린 채 살아간다
그런데 무엇이 내 몸을 자꾸 찌르는 거야
나를 들어올리는 거야
묵직한 棺 하나가 내려오는 아파트를
나는 그냥 지나친다

무덤 박물관 가는 길


아무도 살지 않는 무덤이 점화한다
복제보다 아름다운 기억들이 펑펑 터진다
누가 태초에 봄여름가을겨울의 이름으로 저 제비꽃을
민들레를 엉겅퀴를 개망초를 세상에 꽂기 시작했을까

무덤의 콘센트가 은밀하게 연결되어 있는
땅의 배꼽이 열린다

누가 소멸한 기억에 똥물을 주고 햇볕을 주고
바람을 주며 그들을 불러내는가
빈집 뚜껑을 열고 불쑥 한 덩어리 기억을 끄집어내고
봄여름가을겨울을 떠돌아다니게 하는가
생각해보면, 生은 모두
낯선 집게에 걸려 파닥거리다가 멈추는 것

내 등을 집어올리는 묵직한 고통을 느끼며
여기저기 불룩불룩 솟구쳐 있는 무덤 옆을 지난다
저것들은 땅의 상처, 아물지 않은 물혹들이다
저 푸르디푸른 문을 열어라
이제 내가 열고 들어가야 할 문은
저것 하나밖에 남아 있지 않으므로

지도
-무덤 박물관에서

지도 속에 살구꽃과
버드나무와 산사나무는 왜 그려 넣지 않는가
살구꽃그늘과 버드나무에 사는 벌레와
生의 휠체어와 유모차는 왜 그려 넣지 않는가
붉은 빛과 보랏빛과 푸른빛은 왜 색칠해 놓지 않는가
골짜기와 흡혈귀와
달과 태양은 왜 그려 넣지 않는가
물위의 파문처럼
일생동안 번져나간 사랑은 왜 그려 넣지 않는가

무덤 속의 지도 한 장에는
흐릿하게 지워진 채 그려진 것들이 많아
누런 지도 속에 살구꽃과
푸른 하늘과 눈보라와 빗방울의 영혼이
추억처럼 차갑게 눌러 붙어 있다
바람 속에서 다가온 것들, 바람 속에서 떠난 것들
왜 그려 넣지 않는가
사랑과 눈물과 휘청거리는 꿈은 왜 그려 넣지 않는가

아마존의 부엌


아궁이에 불을 땐 기억이 있다
집의 가장 깊은 심연에 살던 어머니가 죽고
수많은 나무들이 재 되었지만
불 땐 흔적은 시커멓게 남아있다

아궁이 속으로
밤의 이무기가 들어갔다

폐허,
나는 소리 내어 중얼거려본다

방문은 떨어져나갔지만
방은 여전히 남아있다
부엌으로 통하는 작은 문을 만들어놓은 방
문이 없으니
문을 열기가 너무 힘들다

꽃이 된 문이 짓뭉개져 버렸나
누가 밟아, 밟아 납작해져 버렸나
부엌으로 넘어가려는데
슬그머니 움직이는 뱀 한 마리,
허물 벗은 문지방이다

밥상은 아궁이 위에서
밥을 떠받치는 墓(묘)처럼 엎드려 있다
내 손은 숟가락처럼 뻗어나가
집을 퍼먹기 시작한다

아마존의 부엌


자루 속에서 썩어가고 있다
썩지 않는 것들과 함께 잘 썩어가고 있다
싱싱했던 그것들이
가스레인지와 함께 냄비와 함께
냉장고와 함께

먹다 남은 빵과 함께 콜라와 함께
말라버린 꽃과 함께

외출에서 돌아오면
자루 속의 불을 가장 먼저 켜고
냉장고 문을 연다
자루를 가득 채우기 위해
일을 하고 사람을 만나러 나간다

푸른 체크의 식탁보를 오래 걷어내지 못하고
바다를 꿈꾸었지
해변과 파고, 갈매기, 조약돌, 섬
이런 생각은 목젖을 달아오르게 한다

부엌의 불을 끄면
거대한 자루가 묶이는 느낌이다
당연히 내 바다도 함께
컴컴한 자루 속에 갇혀 버린다


□ □

찾아가는 시인, 찾아오는 독자의 만남
제 1회 초청시인 : 권혁웅, 김 륭
제 2회 초청시인 : 서정춘, 조은길
제 3회 초청시인 : 강은교
제 4회 초청시인 : 유홍준, 박서영

시인과 독자와의 만남 · 4
- 시야, 놀자 !

< 유홍준, 박서영 >

발행일 2007년 12월 15일

발행인 이 성 모
편 집 진해시김달진문학관
주 소 경남 진해시 웅동1동 소사리 48번지
전 화 055) 547-2623 Fax: 055)547-2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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