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달진문학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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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e   김달진문학관
Subject   제27회 김달진문학제 기념, 제21회 월하전국백일장 수상작품
제27회 김달진문학제 기념, 제21회 월하전국백일장 수상작품

초등학교부 / 대상

기억하나 꺼내보니
                                      죽림초등학교 6학년 7반 최연서

겨울이었지 한밤이었고
작은 떨림으로 흐느끼는 소리가 들렸다
어디서 나는 것일까
가만히 귀를 기울이니
베란다에서 나는 거였다
뒤꿈치를 들고 발소리 나지 않게
작은 떨림이 있는 곳으로 갔다
화분이 가지런하게 정리돼 있었다
엄마는 이렇게 가지런한 화분에 물을 주었겠지
오래 앉아 꽃나무 한 잎 한 잎 닦아주었겠지
잎에서 싱싱한 초록 냄새가 났다
나는 정돈된 화분 앞에 쪼그려 앉아
어디서 나는 소리인지 집중했다
소리는 안 보이고
눈으로 꽃나무를 천천히 둘러보니
맨 끝 작은 화분에 꽃송이가 있었다
가을 끝에서 모두 자기 일 끝내고 갔는데
혼자 돌아가지 못한 꽃송이
가족을 잃고 친구를 잃고 울고 있는 것이었다
그 많은 꽃이 지는 동안
어린 꽃송이는 힘겹게 꽃눈을 올렸는데
눈을 뜨니 겨울에 도착한 꽃은 얼마나 당황스러웠을까
나는 꽃에게 입김을 불어 넣어주었다
꽃이 울음을 그치길 기다리면서
오래 꽃 앞에 쪼그려 앉아 있었던
그런 때가 있었다

수상소감 /

가장 가까이 있는 것이 가장 좋은 소재가 된다는 것을,

죽림초등학교 6학년에 재학 중인 최연서입니다. 이렇게 큰상을 받을지 몰라서 아직도 얼떨떨합니다. 대상을 받았다는 것이 꿈 같고, 꿈이면 깨지 않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부족한 글에 큰 이름을 붙여주신 관계자 선생님들과 심사위원 선생님들께 진심으로 감사한 마음 전합니다.
백일장을 처음 나가본 때가 3학년 때입니다. 얼떨결에 나간 대회라 시제만 보고 막연히 글을 써 내려가는 것이 어려웠습니다. 산문과 다르게 짧은 문장에 많은 걸 담다 보니 고배의 쓴맛을 봤습니다. 그런 쓴맛을 경험하다 보니 대회에서 맷집이 생겼다고 할까요. 이제는 백일장이 어떤 거란 걸 조금 알겠더라고요. 엄마의 권유로 자꾸 도전하다 보니 좋은 결과가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각종 백일장에 응모하여 한해 한해 많은 수상을 했습니다.
저는 어릴 때부터 동화책 읽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아기 때는 짜증 내다가도 엄마가 책을 읽어주시면 조용해졌다고 합니다. 그렇게 책을 가까이 접하다 보니 일기 쓰기가 수월해졌습니다. 그리고 시를 접하게 되었습니다. 시는 어렵고 작가의 상상력을 따라가기 힘들었지만 필사를 하면서 작가의 감정에 조금씩 다가가는 것을 몸으로 익혔습니다. 그러면서 시를 쓰기 시작했고 한 편 완성하고 나면 짜릿하고 가슴 설레고 떨렸습니다. 자기만족이 아주 높아졌다고 해야 하나요.
이번 대회는 자유시가 3편이어서 좀 부담스럽긴 했지만 평소에 습작하던 시를 퇴고하면서 뿌듯함을 느꼈습니다. 저는 글을 쓸 때 가족이나 자연을 많이 다루는 편입니다. 가장 가까이 있는 것이 가장 좋은 소재가 된다는 걸 알고 있습니다. 이번 대회에 응모할 시에도 제가 좋아하는 할머니를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항상 헌신하는 엄마를 그리며 시에 담으려고 했고요. 자연에서 나무는 우리에게 아주 큰 의미를 부여하고 그걸 지켜갔으면 하는 바람으로 시 한 편을 완성하기도 했습니다.
이런 제 마음을 잘 읽어주신 선생님들께 진심으로 감사한 마음이 큽니다. 그리고 이런 상을 만들어서 우리에게 좋은 기회를 주신 주최측에도 감사를 드립니다. 앞으로도 꾸준한 독서로 저만의 따뜻하고 아름다운 글을 쓰도록 하겠습니다.

초등학교부 / 금상

마음이란 것
                                      제석초등학교 6학년 5반 박시연

발자국이 있었다
따라가 보니 정확한 형태와 구도를 알 수 없는 끝과 끝에
내가 있었다
쓸데없는 상상만 하게 되고
결국 나는 모든 것에 말라 있었다
무구한 날들이 떨어졌다
초신성도 폭발했으면 좋겠다
그렇다면 나는 죽기 전에 아름다운 환상을 볼 수 있을 거다

무수한 별이 쏟아진다
빛도 색깔도 알아볼 수 없는
이것을 스펙트럼이라 부르는 거겠지

우주에서 떨어진 자두가 나를 붉게 만드는 일
어쩌면 이것이 나의 외로움은 아닐까 생각하는 일
같은 것 말이야

빛이 산란한다
앞을 볼 수 없는 나는
천제의 이름을 가졌고

여름이 가기 전에 물러터진 자두를 다 먹어야 한다
여름은 무른 마음을 더 무르게 하므로

순간 내 심장이 툭 떨어졌다
자두와 닮았다
최소한 케르베로스가 내 심장을 물어가기 전까지
나는 마음을 열지 않기로 했다

아무도 없고 나도 모르는 어딘가에
마음을 숨겨두자
세상을 내가 먼저 알아채기 전에
초신성이 폭발하기 전에
아무도 모르게

수상소감 /

많은 감정들이 오가는 시 속에서,
                                                                          
제석초등학교를 다니는 6학년 박시연입니다 이렇게 큰 상을 주신 심사위원분들께 먼저 감사의 인사를 올립니다.

시는 기분에 따라 적는 게 달라집니다. 그래서 대회 전날에는 기분을 최상으로 올리기 위해 좋아하는 일을 하거나 일찍 잠을 잡니다. 많은 단어를 알기 위해 시낭송과 필사를 자주 합니다. 시낭송을 하면 그 시가 저의 마음에 들어와 좋은 성적을 내주게 하는 것 같습니다. 어릴 때부터 필사를 자주 하다 보니 시를 적을 때 도움이 많이 되는 것 같습니다. 그러면서 시에 대해 더욱 더 관심을 가지게 된 것 같습니다. 그래서 시를 가까이 하는 것은 저에게 많은 도움이 되는 것 같습니다.

또한 저는 좋아하는 시인님이 계셨는데 불의의 사고로 돌아가셨습니다. 지금은 올리브 동산에 계신 시인님이 그립고 또 그립습니다. 그 덕분에 문학에 더 관심을 가지게 된 것 같고 시를 적으면서 나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계기가 된 것 같습니다. 가끔은 시가 쓰기 싫을때도 있었지만 이 상을 받고 난 후 제가 아직 시에 대한 열정이 남아있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처음에는 꿈틀거리는 애벌레처럼 서툴렀지만 지금은 많은 경험을 통해 이렇게 성장할 수 있게 된 것 같습니다. 이제 저에게는 시를 쓰는 것이 일상이 되었습니다.

초등학교 3학년때부터 많은 대회를 다녔습니다. 그러면서 많은 감정을 느끼게 됐습니다. 대회에서 떨어진 시를 보며 좌절을 느끼기보단 행복을 느꼈습니다. 떨어진 게 중요한 것이 아닌 대회에서 시를 적었다는 것 자체가 행복했기 때문입니다. 경험을 하는 것은 시로부터 더 접근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떨어진 시의 부족함을 찾고 그 부족한 점을 고치다보면 언젠간 상을 받을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좋은 대회를 만들어주시고 행사를 열어주시는 선생님들께 정말 감사한 마음을 전하고 싶습니다. 그러면서 저의 경험이 하나 더 늘어 저를 더 성장시키게 해주니까요.

다시 한번 큰 상을 주신 심사위원분들과 이런 경험을 하게 해주신 관계자분들께 감사의 말씀 전합니다. 앞으로도 열심히 시를 쓰도록 하겠습니다.

중학교부 / 대상

청춘 해부학
                                     충렬여자중학교 2년 1반 허가윤

빛을 맹신하지 않는다
청춘이란 유년의 비극이라는 다른 말
빼곡한 별자리 궤도를 따라가는 듯
세상을 외면해야 한다는 말
눈을 감아야 비로소 몰아쳤던 우연을 기억한다

희망에 균열을 내는 일이 일과가 되던 날
어둠을 은닉한다고
빛이 짙어지는 게 아니라고
잠깐의 눈속임과
재채기를 유발하는 물질이라 속삭이던 언니

눈을 반짝이며 알려주던 언니는
옥탑에서 식물을 키우고 있었다
우리는 옥상에 앉아 부풀어 오른 별자리를 헤아리며

약하고 무딘 음절을 읊던 밤이었지
노래에 세기가 머무른다는 걸 이제 알겠다
그때 우리가 훔쳐낸 마녀는 목소리가 없었고
어떤 인어족이 목소리를 팔기 전까지
마녀는 벙어리였지

세상의 모든 동화는 거짓이었고
그래야만 한다고 언니가 말했지
내 목소리를 지워야 할까
잠깐 생각하다가
어떤 동화에도 속지 않겠다는 다짐을 했던 것도 같은데

산산조각인 계절에 언니는 없었고
들여다보면 나만 우두커니 남아서

우리를 깊이 들여다본다
그때 우리 뭐였을까 언니,

낡은 주파수가 재생되었으나
비로소 귀를 막지 않게 되었다

수상소감 /

채도 높은 유년을 그리고 싶었습니다

안녕하세요. 월하백일장에서 대상을 수상한 열다섯 살 허가윤입니다. 저는 열을 품은 숫자들을 좋아합니다. 또 이 숫자들이 만연한 여름을 좋아합니다. 푸른 청춘을 좋아하고, 무엇보다도 영원히 푸르게 기억될 유년을 좋아합니다. 그러나 제 유년은 특별한 색이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습니다. 그렇기에 유년의 중심에 있는 저에 대해 자주 고민합니다.
그래서 글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시를 쓸 때는 제 유년을 원하는 색으로 칠할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이번 백일장에 제출할 글을 쓸 때는 채도 높은 유년을 그리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제 세계를 그리고 싶었습니다. 어떻게 해야 할지 많이 고민했고, 대상을 수상했다는 연락을 받았을 때 제 고민들이 결실을 맺은 것 같아 기뻤습니다.
아직 저는 십대를 건너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한참을 열을 품은 채로 살아가겠지요. 열이 끓는 동안 제 유년에게 무수한 색을 쥐어주겠습니다. 그리고 좋아하는 것들을 꾸준히 좋아하겠습니다. 사랑받을 가치가 있는 모든 것을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 되겠습니다.        
소중한 상을 주신 김달진 선생님 감사합니다. 계속 글을 쓰겠습니다.

중학교부 / 금상

아침
                                  충렬여자중학교 2학년 5반 황자연    

조용한 겨울 아침에
미세하게 떨리는 촉감을 감지한다
공중에 산란하는 아침의 상쾌한 공기

하늘에 찍어 놓은 연지곤지는
다양한 구름이 집어삼킨 듯

바람이 흘러가는 방향으로 구름이 흩어지고

밥상 앞에서
마음이 포근해지는 것은
아침 밥상을 잘 차린 엄마 얼굴이 예뻐서다

전기난로 위에 올려놓은 작은 주전자
물이 끓는 온도만큼 뜨거워지면
수증기가 구름처럼 피어나고

위험한 줄 모르고
동생은 수증기를 자꾸 만진다
구름인 줄 착각하는 귀여운 짓을 한다

어느 행복한 날을 추억하며
나는 마음이 서늘해지는데

그것은 밤이 되면 모든 빛이 뒤바뀔 것을 알기 때문,

내가 할 수 있는 건 무엇일까
오로지 새벽의 장막을 이겨내는 것

동쪽 하늘이 천천히 밝아오는 것을
가만히 바라본다

수상소감 /

좌절과 성공이 공존하는 곳에서 우리는,

충렬여자중학교를 다니는 2학년 황자연입니다 이렇게 큰 상을 주신 심사위원분들께 먼저 감사의 인사를 올립니다.

상은 받을 때마다 가슴 벅차게 힘을 줍니다. 누군가에게 인정받는다는 건 그만큼 큰 기쁨이기 때문일 겁니다. 매번 떨어지고 낙심해도 그래서 다음 대회가 있으면 또 관심을 가지고 참가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지금 이렇게 뭉클한 것은 최근에 슬럼프에 빠졌단 걸 느끼고 있던 때문일 것입니다.

시는 다루기 참 힘든 장르입니다. 순간적인 포착이 아니면 영영 나오지 않는 게 시입니다. 그래서 고도의 집중력이 필요하지요. 집중력을 키우기 위해 저는 필사를 많이 합니다. 그리고 외우기를 하지요. 그러면서 시가 제 속으로 걸어오게 길을 열어줍니다. 어릴 때부터 이런 훈련을 계속해서인지 집중을 하면 순간적으로 시가 나올 때가 많습니다. 하지만 늘 좋은 시가 나오는 건 아닙니다. 우리는 품어야 하는 게 시만 있는 게 아니니까요. 영어 수학 공부를 하면서 시를 가까이 하는 건 이성과 감성이 잘 소통되게 해야 하는 일입니다. 수영장에서 찬물과 더운물을 오가는 일과 같다고 하면 적절한 표현일까요.

요즘은 소설책 읽는 것이 좋아졌습니다. 어렸을 때는 책을 읽는 것보다 책을 펼치고 가만 앉아있는 것이 더 좋았습니다. 생각이 고요해지는 게 좋았거든요. 하지만 요즘은 틈나면 소설책을 읽으며 혼자만의 생각에 빠지는 것을 즐깁니다. 그리고 책 속 인물과 이야기하는 것도 좋아졌습니다.  

초등학교 4학년부터 여러 지역의 백일장을 수없이 다녔습니다. 그런 과정에서 많이 떨어지고 많은 상도 받았습니다. 상을 못 받을 때 왠지 기가 죽고 주눅이 들었는데 어느 날 깨달았습니다. 제 생각이 자라고 있는 것을요. 떨어진 제 시를 보면서 왜 떨어졌을까 생각을 해보면서 집에서 다시 퇴고를 해보기도 했습니다. 좌절과 성공이 공존하는 곳에서 저는 저의 탑을 쌓고 있었던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렇게 좋은 대회를 만들고 행사를 하는 선생님들께 정말 감사한 마음 전하고 싶습니다. 결국 저희를 성장시키는 것은 이런 대회가 있으므로 가능하니까요.

다시 한번 큰 상을 주신 심사위원분들과 이런 경험을 하게 해주신 관계자분들께 감사의 말씀 전합니다. 앞으로도 열심히 시를 쓰도록 하겠습니다.

고등학교부 / 대상

비명은 침착하게 고요하게

                               김해수남고등학교 3학년 4반 최준원

요즘은 개보다 의자를 키우고 싶습니다
세상의 엉덩이를 물어뜯고 싶은 날이 점점 늘어나니까요
의자가 나를 킁킁댑니다 핥아줍니다
뭐라뭐라 선생님은 새빨개진 얼굴로 열변을 토하지만
나는 고개를 외로 꼬고 창밖을 봅니다
까치가 철봉 위에 앉아 있습니다
까매진 머릿속으로 빛이 드는 순간입니다
그림자를 하얗게 바꾸고 싶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까치가 까마귀로 변할까 봐 더럭 겁이 나기도 합니다
내가 숨긴 비명은 필통 속의 연필처럼
누워있습니다
까치가 철봉 위에 매달립니다
까마귀로 변할 수 없다면
까악까악 울음이라도
빌리고 싶을지 모릅니다
그때 선생님이
자, 조용!
칠판을 탁탁 두드립니다
엉덩이 밑에서 까악까악
눌러놓았던 울음소리가 새어 나옵니다
부디 의자를 잘 키우고 싶습니다
책상 위로 올라와 꼬리를 흔들어대는
의자를 볼 때마다
나는 나를 의심하게 됩니다
이러다간 떠돌이 개가 되는 건 아닌가
자, 집중 집중!
나는 선생님의 늙은 애완견처럼 엉덩이를
벅벅 긁었습니다

수상소감 /

배우던 미술을 그만두고 집 앞 놀이터 그네에 앉아 썼던 시를 시작으로 여기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참 시렸던 10월의 밤이었습니다. 저는 스스로 외로운 사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 외로움은 인간관계에서 오는 감정이 아니었습니다. 마음 한편에 응어리져 있는 말을 같이 공감해 줄 사람이 없다는 생각에서 온 감정이었습니다. 그래서 시를 쓰게 되었습니다. 지금 와서 보니, 제 모든 시들은 그네의 그 시를 퇴고한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함께 글 공부를 하는 친구가 없어 항상 제 시에 대해 확신을 가지지 못했는데, 이런 뜻깊은 상을 받아 마음의 짐을 조금 덜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아직 부족한 제 시를 높게 평가해 주신 심사위원분들께 감사한 마음입니다. 무엇보다도 갈팡질팡하는 저를 믿고 기다려주신 부모님, 시를 시작하게 해주신 스승님, 그리고 참고 견뎌준 저에게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사실 아직도 대상을 받았다는 게 실감이 나지 않네요, 설렌다는 말로도 다 표현할 수 없는 이 감정을 늘 간직한 채 써 내려 가겠습니다.

고등학교부 / 금상

장마
                                      소하고등학교 2학년 3반 곽예은

바둑판 위 돌들처럼 모인 가족들
사촌동생은 고사리손을 꽉 쥔 채 할머니의 어깨를 두드린다
촘촘한 격자무늬의 불투명한 창문 밖은
늘 안개가 꼈던 할아버지의 눈동자 색을 띠고 있다
동생의 손이 내는 시원한 소리에 맞춰 후두둑 떨어지는 빗물

창문으로 본 먹구름은 옷장 밑 구석에서 나왔다
그 구름이 오기까지 나는
할아버지의 단추와 빛 바랜 사진을 보았고
즐겨 입으시던 셔츠의 단추는 이제 꿰맬 일 없다
모퉁이가 구겨진 사진 위 먼지를 닦아내고 나니
선명하게 보이는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꼿꼿한 모습
부엌에 계신 할머니의 굽은 허리는 찾아볼 수 없고

빗소리는 기름 두른 팬에 반죽 올려놓는 소리를 닮았다
팬을 한 바퀴 돌리면 물웅덩이는 넓어지고
추억을 한 바퀴 돌리면 아린 마음이 넓어진다
내리는 빗줄기처럼 쉴 새 없이 쏟아지는 할아버지와의 추억

잠시 잦아든 목소리의 떨림
뭉툭한 삼촌은 일어나 향을 피운다
겨울에도 냉한 집에 사시던 할아버지
지금도 뜨거운 불이 싫어 잡아채가시나
도통 불은 붙지 않고

온종일 차가운 방에서 지내시던 할아버지는
손주들이 오면 무릎 잡고 일어나 가장 먼저 따뜻하게 집을 데워주셨다
이름도 어려운 빵을 우리 먹으라고 사오셨던 할아버지

방 안에선 동생들의 장난감 로봇이 쾌활한 웃음 소리를 뿜어낸다
기웃기웃거리는 손주들의 얼굴을 알아차리셨는지
로봇의 웃음소리가 잦아들었을 때 슬며시 피어오르는 향

시절을 가득 담은 눈물이 뺨을 타고 흐른다
텔레비전 속엔 한동안 계속 비가 내린다는 일기예보
장마가 끝날 때까지는 계속 가지고 있을 소중하고 투박한 마음

수상소감 /

가끔은 시를 쓰며 방향성에 대해 고민합니다, 완전하게 확신이 들지 않는 상황 속 아슬아슬하게 시를 써왔습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이 상은 저에게 시 창작에 대한 확신을 안겨주었고 앞으로 어떻게 나아가야 할지에 대한 힌트를 주었습니다. 항상 옆에서 응원해주시는 엄마께 감사를 전합니다. 열심히 지도해주시는 선생님께도 감사를 전합니다. 앞으로도 열심히 쓰겠습니다.

고등학교부 / 금상

ㅈㅣㄹ ㅈㅣㄹ
                                    당곡고등학교 1학년  5반  김서현

아이들이 슬리퍼 속에
질척해진 발을 구겨 넣을 때면
등굣길엔 질질 끄는 소리가 가득했다

영단어의 스펠링이
책가방 뒤로 끌려가는 소리
성적표에 찍힌 소수점들이
걸음걸음을 붙잡는 소리

커가는걸 두려워하던 아이들은
무릎 굽히는 법을 잊었고
밑창 아래 덜 깬 하루를 끼워 넣을 때면
걸음은 더뎌졌다

영어 선생님의 구두 소리 탓에
질질 끌리는 소리들이 지워져 가는데
아이들은 웅크렸던 발가락을 더 웅크린다

얘들아, 너네 아직 어려
왜 그렇게 힘든 표정만 짓니
웃어봐

닳아버린 슬리퍼 밑창과
수많은 교시째 똑딱이는 시계 소리
밤을 새워가던 작은 아이들의 기억이
무안해진다 구두의 한마디에 참 쉽게도
버텨왔던 오늘까지의 아이들이
웃어보란 말에 잘도 지워져 간다

여름비가 하굣길을 뚜벅일 때면
골목을 가득 채우는 슬리퍼 소리
밑창 아래 끼워둔 하루가 제 몸을 줄이고
닳디닳은 아이들의 발은 여전해서
하굣길엔 질질 끄는 소리가 가득했다

수상소감 /

"쓴다"는 건 무엇일지 매일을 고민하면서도 저는 또 씁니다. 누군가는 시를 행성이라 말하고 세계라 말하고 조각이라 말하지만 저는 아직 저의 시에게 애틋한 이름을 지어주지 못했습니다.
이런 글에 금상이란 이름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또 친구들과 언니들, 선생님, 뿐만 아니라 저의 시에 입을 맞추던 모든 분들께 감사합니다. 
가을이 오고 수많은 달이 잊혀지는 동안 저는 또 "쓴다"는 게 무엇인지 고민하며 노트북을 두들일 것 입니다.
저의 시가 또 다른 이름을 갖고 누군갈 다정히 사랑하길 바라며, 언제나 시어 앞에 여전하게 있겠습니다. 

대학·일반부 / 대상

수상자 없음


대학·일반부 / 금상

추신, 파블로 네루다
                                                   한양여자대학교 이성은  

파도가 치고 손톱이 썰린다
약속 없이 오는 감각
더는 갈 데가 없는데도 떠나고 싶게 하는
수몰되지 않은 심장
나는 너무 늦게야 알아 버린 거야

정몽을 꾸는 날은 네루다의 섬을 생각하며
마침내 바다에서 오랜 너를 빠뜨리는 꿈

여기 바다에서는 말야
매 순간 얼마나 많은 바다가 솟아나는지
사실이야 거짓말이야 아니 사실은
늘 열렬한 것들은 침잠하기 마련
나는 살기 위해 바위에 들러붙고

소용없어
우린 모두 바다가 못 된대
이름으로 된 장송곡을 불렀다
내가 빠뜨린 얼굴이
결국 나의 안면이었다던가

한 움큼씩 울면
바다가 생기는 데 도움이 될 거야
유언을 남길 때까지
엎드려 울며 숨을 죽이는 법을 배우고

평생 외롭겠다고 다짐했어요
이제 책임질 때가 온 거에요
오래 전 죽은 그에게 푸른 편지를 부치고 난 후

아무 생각 없이 진득한 발바닥을 밟다가
갯지렁이의 눈을 마주하고는
방금 생긴 푸르지 않은 상처를 만진다

정말 모든 것을 외면할 시간
바다도 엎드려서 잠을 잤다
영영 눈도 감고 잤다

수상소감 /

그저 성실하게 한 해를 나고 싶어서 공모 기간이 되자마자 시를 출품하게 되었는데, 막상 수상과 관련하여 연락을 받고 나니 스스로 욕심이 많은 사람이었다는 것을 확인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좋은 경험을 하게 해 주셔서 감사하다는 말씀을 많은 분들게 드리고 싶습니다.
확인받고 싶어 시를 쓸 때가 지났다고 생각했는데, 아직은 무던히 노력해야겠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게 된 소중한 기회인 것 같습니다. 스스로 자명해지기 위해 더 열심히 쓰고 읽게 도와주셨던 많은 분들께도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가장 애틋한 기분이 드는 건 어쩐지 아무렇게나 썼다고 생각하던 세 편의 시들인데, 누구에게도 보여주지 않았던 시임에 그런 마음이 드는 모양인 것 같습니다. 한 편씩 곱씹자면 <추신, 파블로 네루다>를 쓰게 된 계기는 단순히 ‘내가 언제언제 좋은 영화를 보았다.’ 라는 감상에 그치지 않고 더 나아가고 싶다는 욕심이 들어 단순히 실행에 옮긴 데서 시작되었습니다. 가장 기억에 남는 문장을 꼽자면 ‘여기 바다에서는 말야 / 매 순간 얼마나 많은 바다가 솟아나는지’ 였는데 한 계절을 보내고 읽어도 뭉툭한 구석이 없어 그런 것 같습니다. <생>이라는 시는 각기 문장을 끄적인 것을 최선을 다해 견고하게 만드려고 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무엇 하나 죽고 태어나는 것이 당연하지 않다는 생각이 든 후로부터 꾸준히 짓고 싶었던 제목이었는데, 이 시는 제가 적어 내린 대로 ‘어느 말도 인용하지 않’ 고 오롯이 섰을 때 다시 기억하고 싶습니다. 아직은 그럴만한 자격도 되지 않는 것 같고, 어쩐지 버겁게 느껴지는 커다란 제목이니까요. 마지막으로 <술래잡기>라는 시는 정말 아끼는 시를 하나 욕심을 부려 욱여넣었던 기억이 납니다. 좋게 읽어주시는 분들이 많기를 바랐던 시였는데 번번히 고칠때마다 훨씬 작위적으로 변해가서 속상한 점도 많았습니다. 덜어낼 것을 덜어내고 채워낼 것을 채워내다 보니 균형을 맞추어 좋은 방향으로 작용한 것 같아서 마음이 놓였습니다.
만약에 지금보다 시간이 지나면 저 스스로도 ‘흘러가는 이름을 아끼지 말고 실수 없이 찾아내’ 는 때가 곧 올 것이라고 믿습니다. 그때가 되면 지금보다 훨씬 많은 것을 감내했을 것이고 훨씬 기쁘고 훨씬 슬퍼서 때가 탄 마음으로 살겠지만, 그런 것들이 어쩌면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해서 계속 쓰고 읽을 생각입니다. 앞으로 더 곧은 시를 쓰겠습니다


월하 전국백일장 심사평


올해로 스물한 번째를 맞이한 월하전국백일장에 초등학생부터 대학, 장년에 이르기까지 많은 작품이 투고되었다. 한 행사를 스무 해를 넘기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행사를 주관하시는 분들의 의지와 정성이 월하백일장을 여기까지 키워온 것일 터, 적잖은 분들이 이 백일장을 통해 힘을 얻고 글쓰기의 장도에 나선 줄 안다. 참으로 좋은 일이다.  
초등, 중등, 고등, 그리고 대학·일반 네 개의 모둠으로 나누어 심사가 진행되었다. 예년과 비슷하게 고등부에 투고작이 많을 뿐만 아니라 작품의 수준도 높았다. 특별한 경향이라고 할 만한 것이 없을 정도로 다양한 주제와 개성이 경합하였는데, 초등부터 장년에 이르기까지 공히 상당한 습작기를 예상할 수 있는 작품들이 많이 투고되었다. 특히 초등과 중등 부문의 투고작들은 일반의 통념과 달리, 동원된 어휘나 시어를 다루는 능력이 대학·일반부 못지않은 수준을 보여주었다. 아마도 글쓰기와 관련된 전문적인 연습에 참여한 데서 기인한 듯하다. 상상력을 계발하고 표현 능력을 높인다는 점에서는 고무적인 일이지만 청소년기의 활달한 개성이 그러한 연습 과정을 통해 일정(一定)해질 수 있다는 점에서는 재고할 내용이다. 그럴듯하게 언어를 다루는 기술만으로 좋은 글을 쓸 수는 없는 일이다. 자신만의 시선과 개성이 있어야 오래 갈 수 있는 법이다.
초등부 대상작인 최연서의 「기억 하나 꺼내 보니」는 초등학생 같지 않게 대상에 대한 성숙한 시선과 감성이 돋보였다. 늦가을에 꽃을 틔운 꽃송이에 대한 뜨거운 환대가 인상적이었으며 사물들에 대한 찬찬한 관찰의 시선도 주목할 만하였다. 금상을 수상한 박시연의 「마음이란 것」 역시 성인의 시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로 ‘마음’에 관한 성찰과 표현 능력이 뛰어났다. 말맛이 살아 있을 뿐만 아니라 마음을 다른 사물과 연관 짓는 능력, 특히 “여름이 가기 전에”로 시작하는 자두와 관련된 대목은 발군이었다.
중등부 대상작인 허가윤의 「청춘 해부학」은 문학청년들의 습작이라 할 만한 작품이었다. 언어 구사 능력이 뛰어나고 “약하고 무딘 음절을 읊던 밤이었지/노래에 세기가 머무른다는 걸 이제 알겠다” 등의 표현이 인상적이었다. 반면 금상 수상작인 황자연의 「아침」은 청소년기의 감성이 잘 표현된 작품이다. ‘아침’ 시간에 대한 감성 경험이 소품처럼 그려져 있으면서도 ‘아침’을 통해 생의 의지나 태도도 아로새겨놓고 있는 작품이다.
고등부 대상 수상자인 최준원의 투고작은 전반적으로 상상력이 돋보이고 개성적이었다. 대상 수상작으로 선정된 「비명은 침착하게 고요하게」는 수업에 참여하고 있는 화자의 내면이 교실 안팎의 생생하고 활달한 사물 풍경을 통해 아이러니하게 표현된 작품이다. “개보다 의자를 키우고 싶다”는 서두의 발상이 돋보일 뿐만 아니라 시의 구성 능력도 뛰어나다. 금상을 수상한 곽예은의 「장마」는 할아버지를 추모하는 화자의 내면이 제사의 풍경 속에 잘 스며있는 작품이다. 불투명한 창문의 빛에 할아버지의 눈동자를 겹쳐놓은 대목은 꽤 인상적이었다. 또 한편의 금상작인 김서현의 「ㅈㅣㄹㅈㅣㄹ」은 입시체제 속에 잃어버린 교실의 활력을 아이들의 발걸음소리를 통해 탁월하게 형상화한 작품이다. 사물에 대한 섬세한 관찰력과 시선이 돋보인 작품이다.
대상작 없는 대학·일반부의 금상 수상자인 이성은의 「추신, 파블로 네루다」는 영화 <일 포스티토>의 주인공 ‘마리오’를 화자로 삼아 생에 대한 비의를 바다의 메타포로 형상화한 작품이다. 다른 투고작들과 더불어 이성은의 시에서 보이는 상실의 감성은 충분히 개성적이다.
초등부부터 대학·일반부까지 상당한 연습을 거친 분들의 작품들이 월하백일장에 투고되고 있다. 지역에서 열리지만 전국 최고 수준의 백일장으로 자리 잡은 월하백일장이 시쓰기에 관심 있는 분들에게 더욱 매력적인 이정표가 되길 바란다. 백일장에 투고한 모든 분들에게 감사드리며, 수상자들에게 뜨거운 축하의 말씀을 전한다.
모두 시를 통해 멀리 나아가시길, 그래서 우리 공동체가 좀더 근사해지길.
- 金文柱(문학평론가, 영남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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